대사헌을 지낸 남인 문신으로 이익의 아버지, 호는 매산, 경신환국 뒤 운산에서 별세
| 생몰 | 1628 ~ 1682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여주 이씨 |
이하진(1628~1682)은 조선 후기의 남인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 호는 매산(梅山) 또는 육우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도승지, 대사헌, 진주목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소개하며, 시와 초서로 이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상의의 손자로, 막내 아들이 실학자 이익입니다.
1680년 경신환국 때 대사간으로서 윤휴와 허목 같은 남인 거두를 다시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숙종의 노여움을 사 진주목사로 좌천되었습니다. 이어 김석주와 뜻이 맞지 않았다는 배경 속에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되었고, 1682년 유배지에서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익은 1681년 아버지의 유배지 운산에서 5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고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이하진의 위패는 원주 매산사 등에 후손과 함께 모셔진 것으로 소개됩니다. 문집 등 세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이익은 실학자로 이름났고, 이잠은 아들 이익의 형입니다.
1680년 경신환국 때 윤휴·허목 등 남인 거두의 재등용을 주장해 숙종의 노여움을 샀고, 진주목사로 좌천된 뒤 운산에 유배되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