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때 영의정에 오른 소정공파 문신, 무오사화에 관여했고 갑자사화로 사사
| 생몰 | 1427 ~ 1504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파평 윤씨 |
윤필상(尹弼商, 1427~1504)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 자는 탕좌(湯佐)·양좌·양경입니다. 소정공 윤곤의 증손으로 소개되며, 세조 즉위 뒤 도승지 등을 지내 세조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시애의 난 때 왕명 출납을 맡아 적개공신 1등에 올랐고, 원종공신·적개공신·좌리공신으로 세 차례 녹훈되었습니다. 1479년 서정도원수로 건주위 정벌에 참여했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파평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연산군에게 궤장을 받고 기로소에 들었으나 1498년 무오사화를 주도해 김일손·정여창 등 사림을 숙청한 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504년 폐비 윤씨 사건과 관련해 갑자사화에서 죄를 추궁받아 진도에 유배된 뒤 사약을 받았고(약으로 죽지 않아 자결했다고도 전합니다), 아들들도 참형되었습니다.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습니다.
세조 때 도승지 등을 지냈고 이시애의 난에서 적개공신 1등에 올랐으며 세 차례 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고, 1498년 무오사화를 주도해 사림을 숙청했다는 점은 평가가 엇갈립니다.
1504년 진도 유배 뒤 사사되었고 아들들도 참형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소정공파 윤곤의 후손으로 정리되며, 같은 파에서 정현왕후(윤호의 딸)가 나왔습니다. 아들들은 갑자사화 때 참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