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낙안군수 ·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선봉으로 싸우다 전사
| 생몰 | 1561 ~ 1598 |
| 시대 | 조선 중기(임진왜란) |
| 본관 | 온양 방씨 |
방덕룡(方德龍, 1561~1598)은 임진왜란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온양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의 자를 낙천(樂天)으로 적고, 위키백과는 자를 운보(雲甫), 호를 낙천으로 적습니다. 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방호의(方好義)이고, 증조부는 계림군 방윤(方輪)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려, 백과사전은 아버지를 방원복(方元福), 어머니를 안악 이씨로 적고, 위키백과는 아버지를 여절교위 방헌침(方獻忱), 어머니를 경기도관찰사 정언각의 셋째 딸로 적습니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가 굳이 무장의 길을 택한 것은, 증조부 방윤이 동북면 병마절도사로 있다가 순직할 때 창을 내려주며 앞으로 나라에 어려움이 있으면 나라를 지키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방호의도 문신이었으나 무재가 뛰어나 전라좌도·경상우도·충청도의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왜구 방어에 힘쓴 인물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100여 명을 모아 원균의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낙안군수로 있으면서 부사 이영남, 만호 송여종과 함께 절이도(折爾島)에 복병해 있다가 적을 협공해 크게 이겼습니다. 이듬해인 1598년 통제사 이순신의 선봉이 되어 노량해전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했습니다.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습니다.
온양 방씨 가운데에는 이순신과 함께 싸운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목포만호 방수경, 옥포만호 방승경, 이순신의 군관 방응원 등을 꼽고, 방성석의 연구(「임진왜란 극복과 온양방씨의 역할에 관한 고찰」, 2016)는 방덕룡과 방응원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조선 수군의 영웅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순신의 장인 방진도 같은 온양 방씨여서, 문중 자료는 방덕룡을 이순신의 처가 쪽 친척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온양 방씨 문중의 기록에 전하며, 할아버지 방호의·증조부 방윤으로 이어지는 무인 집안의 후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