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중 閔鼎重

조선 후기 좌의정, 서인에서 노론으로, 인현왕후의 백부, 호 노봉, 시호 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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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628 ~ 1692
시대조선 후기
본관여흥 민씨

생애 약력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은 조선 중기 이후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삼방파 민광훈의 아들이며 형은 학자 민시중, 동생은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입니다.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운 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689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릴 때 노론을 택했습니다.

1649년(인조 27)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성균관전적을 시작으로 삼사와 승정원의 청요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1652년에는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소현세자빈이던 민회빈 강씨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민회빈 강씨는 숙종 때 복권되었습니다. 한편 윤휴·윤선거 같은 학자를 당색을 넘어 등용하자고 주청해 인재 천거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대사성으로 있을 때는 성균관의 개보수와 강학에 정성을 기울였고, 함경도관찰사로서도 학구열과 문풍 쇄신에 힘썼습니다.

예송논쟁을 거치며 남인에 대한 태도가 강경해졌고, 1675년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그해 남인이 집권하자 관직을 삭탈당하고 1679년 장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풀려나 우의정, 이어 좌의정이 되었으며, 호포(戶布) 개혁을 시도했으나 영의정 김수항 등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그해 보사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습니다. 저서로 《노봉집》·《노봉연중설화》·《연행일기》가 있고, 《노봉선생문집》 목판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외할아버지 민경혁은 그의 4대손으로 전해집니다.

아버지 민광훈은 강원도관찰사를 지냈고, 어머니는 연안 이씨입니다. 어머니를 통해 남인 온건파 영수 허적과도 인척이어서, 남인과의 관계를 처음에는 열린 자세로 대했으나 예송논쟁 이후 대립으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형은 학자 민시중이며, 형제의 후손은 근대까지 이어져 민영휘는 민시중의 7대손으로 정리됩니다.

민회빈 강씨의 신원을 청하다

효종 때 암행어사에서 돌아온 직후 소현세자빈이던 민회빈 강씨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 상소했고, 이는 이후 여러 번 이어진 신원 여론의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문의 후손

동생 민유중의 딸이 인현왕후이며, 아들 민진장은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서녀 묘표를 직접 지어 "이 아비"라 일컬은 일화가 문집에 남아 있습니다.

묘소

경기도 여주시 상거동에 묘소가 있으며, 1986년 4월 여주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후손

아들 민진장(우의정). 손자 민안수는 흥선대원군의 외고조부로 전해집니다.

민정중 자주 묻는 질문

민정중은 어떤 사람인가요?

1649년 장원급제해 좌의정에 오른 서인·노론 문신으로, 인현왕후의 백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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