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언군 이인의 부인, 상계군의 어머니,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
| 생몰 | 1753 ~ 180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진천 송씨 |
상산군부인 송씨(常山郡夫人 宋氏, 1753년 10월 15일~1801년 4월 4일)는 본관이 진천이고, 장조(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이인의 정실부인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부친은 참봉 송낙휴이고 모친은 능성 구씨입니다. 고조부 송창은 공조판서와 한성부 판윤을 지냈으나 적자가 없어 사촌 송정의 아들 송수량을 양자로 삼았고, 이 송수량이 상산군부인의 증조부입니다. 천주교에 귀의해 신유박해 때 순교했고, 철종이 즉위한 뒤 복권되었습니다.
1765년(영조 41) 은언군과 혼인했습니다. 김문근이 쓴 묘비명에 따르면 몸이 아파도 따뜻한 솜털옷 등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기일을 앞두고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추모했다고 합니다. 1771년 남편과 시동생 은신군이 시전 상인에게 진 빚이 영조에게 알려진 뒤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영조는 은언군의 처부 송낙휴가 제대로 인도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물어 변방으로 보냈다가 얼마 뒤 풀어 주었습니다.
아들 상계군 이담(1769~1786)은 홍국영에 의해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의 양자로 출계했다가 파양되었고, 이후 역모에 몰렸습니다. 1786년 11월 상계군이 음독하여 사망했고, 아버지 송낙휴가 상계군이 파양당한 뒤 원망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고변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외숙부 구명겸과 외재종조부 구선복 등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했고, 남편 은언군은 강화로 유배되었으며 이후 부부는 작호를 빼앗겼습니다.
위키백과는 상산군부인이 이후 환란 속에서도 근심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묘비명의 서술을 소개합니다. 천주교에 귀의한 일로 1801년 신유박해에서 순교했고, 철종 즉위 후 복권되었다고 합니다. 철종은 은언군의 손자이므로 이 복권은 가문이 재조명되는 시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편 위키백과의 상계군 문서는 상계군의 생모가 상산군부인이 아니라 궁녀라는 설도 있다고 소개하므로, 이 부분은 이설이 있음을 밝힙니다. 천주교 순교자로서의 세부 기록은 천주교 측 자료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송창에게 적자가 없어 사촌 송정의 아들 송수량(5촌 조카)을 양자로 삼았고, 그 증손녀가 상산군부인입니다. 따라서 상산군부인은 송창의 고손녀입니다.
아들 상계군 이담이 있습니다.
장조의 서자 은언군 이인입니다.
상계군 이담입니다.
천주교 신자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