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때 공조판서·좌참찬을 지낸 서인계 문신, 호 우곡
| 생몰 | 1633 ~ 1706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진천 송씨 |
송창(宋昌, 1633~170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천이고 자는 한경(漢卿), 호는 우곡(藕谷)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색은 서인이고 전라도 전주 출신입니다. 증조부는 송영진, 할아버지는 송흥시, 아버지는 송유전(宋有銓, 宋有佺으로도 표기)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 이정의 딸입니다. 부인은 능성 구씨 구치중의 딸이었으나 자녀가 없어 5촌 조카 송수량을 양자로 들였습니다. 할아버지 송흥시는 송영구의 양자가 되었다고 하여 송영구와 이어지는 집안입니다.
1657년(효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658년 세자시강원 설서가 되었고 춘추관 기사관으로 『효종실록』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1660년 강원도 도사로 나가서는 양반 선비들이 본가·외가·처가의 인연에 기대어 청탁하고 임용되는 폐단을 예조에 상주해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장령 등 언관직을 오래 맡았고 1669년 김제군수로 나갔습니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책봉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 연경을 다녀왔고, 돌아와서 『현종실록』과 현종의 행장을 짓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1675년 승지로 있을 때 상복 문제를 둘러싼 남인 윤휴와 서인 김만중의 다툼에서 김만중이 파직되자 그를 변호했다가 평안도관찰사 민종도 등의 탄핵을 받고 함께 파직되었습니다.
1680년 승지로 복귀한 뒤 강원도관찰사(1682), 황해도관찰사(1689), 도승지(1697), 예조참판(1699)을 지냈고, 1702년 한성부 판윤이 되었습니다. 1703년 우참찬, 1704년 공조판서를 거쳐 1706년(숙종 32) 좌참찬으로 재직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키백과 '진천 송씨'는 1704년 공조판서를 거쳐 1706년 좌참찬에 이르렀다고 요약합니다. 그의 고손녀가 은언군의 부인 상산군부인 송씨입니다.
1660년 강원도 도사로 있을 때 본가·외가·처가의 삼연(三緣)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는 양반들의 폐단을 예조에 아뢰어 고쳤다고 위키백과는 전합니다. 구체적 조치의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양자 송수량을 통해 고손녀 상산군부인 송씨로 이어집니다.
우곡(藕谷)입니다.
공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습니다.
송창이 상산군부인 송씨의 고조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