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손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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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密陽 孫氏) — 신라 효자 손순을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손씨의 대표적 계열로, 2015년 기준 306,895명이며 19~21개 파로 나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306,895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밀양 손씨란

신라 효자 손순을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손씨의 대표적 계열로, 2015년 기준 306,895명이며 19~21개 파로 나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밀양 손씨 인구는 약 306,89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손씨라도 본관(밀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좌사부공파, 중서령공파, 군사공파, 봉순대부공파, 명천공파, 돈암공파, 목사공파

좌사부공파 (左師傅公派)

좌사부공파는 손탁을 파조로 합니다. 고려 충렬왕 때 정당문학을 지내고 밀성군에 봉해진 손빈(孫贇)의 아들 손광(孫洸)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각각 좌사부공파·봉순대부공파·중서령공파·군사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손탁의 현손 손태량(孫台亮)은 임진왜란을 피해 밀양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송계리 명계촌으로 옮겨 성주 입향조가 되었고, 후손들이 성주 용암면 중거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습니다.

중서령공파 (中書令公派)

중서령공파는 손광(孫洸)의 아들 손타를 파조로 합니다. 밀성군 손빈의 손자 대에서 갈라진 네 파 가운데 하나로, 밀양 손씨 종친회가 꼽는 19개 분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사공파 (郡事公派)

군사공파는 손광(孫洸)의 넷째 아들 손영을 파조로 하며, 군사공영파라고도 표기합니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죽동에 사는 밀성 손씨는 주로 손영의 후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동에는 죽원재사와 죽포정사 등 문중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봉순대부공파 (奉順大夫公派)

봉순대부공파는 손광(孫洸)의 아들 손하를 파조로 합니다. 좌사부공파·중서령공파·군사공파와 함께 밀성군 손빈의 손자 대에서 갈라진 네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명천공파 (明泉公派)

명천공파는 손순의 30세손 손윤생(孫潤生)의 후손입니다. 손윤생은 세조 즉위 때 도만호로 공을 세워 원종공신 3등에 오르고 충청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당진포 진성을 순시하다 고대면 대촌리 한천동의 샘물에 반해 그곳에 정착하고 호를 명천(明泉)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500여 년 동안 당진 고대면 대촌리·진관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어 당진의 대성으로 꼽히며, 한말 의병장 손응현(孫應鉉) 등이 이 파 출신입니다.

돈암공파 (遯巖公派)

돈암공파는 돈암(遯巖) 손기남(孫起南, 1539~1606)을 파조로 합니다. 손기남은 고려 개국공신 손긍훈의 후손으로, 경상도 의흥현(지금의 대구 군위군 의흥면) 출신의 선비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는 의흥향교에서 오성위판과 경서를 옮겨 인근 산의 바위굴에 8년간 보존하였고, 전란 뒤 선조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목사공파 (牧使公派)

목사공파(牧使公派)는 밀양 손씨 25세손 손책(孫策)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해집니다. 고려 말~조선 초의 인물로,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화를 입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후 아들들이 전라도 나주·보성·정읍 등지에 정착하면서 후손이 번성했다고 합니다. 파조의 세수와 행적은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밀양손씨중앙종친회가 꼽는 19개 분파에 목사공파가 포함되어 있으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손화중, 서예가 손재형 등이 목사공파로 표기됩니다. 참고로 밀양 박씨 등 다른 본관에도 목사공파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카드는 밀양 손씨 목사공파를 다룹니다.

주요 항렬자 — 현대에 쓰이는 항렬자이며, O는 이름의 나머지 글자 자리입니다.

세대항렬자(돌림자)
45세○漢(한)·永○(영)
46세東○(동)·秉○(병)
47세○烈(열)·○燮(섭)
48세在○(재)·重○(중)
49세○鉉(현)·○種(종)
50세承○(승)·泰○(태)
51세○株(주)·○恒(항)

세대 및 지역 종중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밀양 손씨는 통일된 항렬표 없이 계파·문중별로 항렬자를 정해 쓰므로, 정확한 항렬은 소속 종중에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구례마(밀양 손씨 원조), 손순(시조·문효공), 손긍훈(중흥조), 손화중, 손재형, 손병희, 손정도, 손원일, 손기정, 손석희, 손흥민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밀양 손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밀양 손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손병희 (1861~1922)천도교 제3대 교주·독립운동가 (호 의암), 3·1운동 민족대표손정도 (1881~1931)독립유공자 · 임시정부 · 독립장(1962)손용우 (1923~1999)독립유공자 · 학생운동 · 학생운동

밀양 손씨 친일 인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밀양 손씨 계열 인물입니다.

손재하 (1889~1952)정치·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손창식 (1906~1979)정치·경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시조 손순과 본관의 유래

밀양 손씨(密陽 孫氏)는 경상남도 밀양을 본관으로 합니다. 신라 6부의 하나인 대수촌(大樹村)의 촌장으로 손(孫)씨 성을 하사받고 문의왕(文義王)에 추봉된 구례마(俱禮馬)를 원조(元祖)로 삼으며, 시조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 문효공 손순(孫順)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손순은 노모의 음식을 어린 자식이 빼앗자 아이를 묻으려 땅을 파다 신비한 석종(石鐘)을 얻었고, 그 종소리가 궁궐까지 들려 흥덕왕이 집과 곡식을 내렸다고 합니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이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후손이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밀양손씨 종친회는 일직 손씨를 제외한 손씨의 대종으로 보기도 하나, 경주 손씨를 옛 대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인구와 세거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밀양 손씨는 306,895명으로, 1985년 243,473명, 2000년 274,700명에서 꾸준히 늘었습니다. 대표적인 집성촌으로는 경상남도 밀양시,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전라남도 보성군, 평안남도 양덕군(북한 지역)이 꼽힙니다.

신라에서 고려까지

중흥조 손긍훈(孫兢訓)은 손순의 7세손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지면서 가세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정당문학을 지내고 밀성군에 봉해진 손빈(孫贇)의 손자 대에서 좌사부공파·봉순대부공파·중서령공파·군사공파가 갈라졌고, 고려 말에는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화를 입었다고 전하는 손책(孫策)을 파조로 하는 목사공파도 이어집니다.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 밀양 손씨는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해 문신보다 무신이 많은 무반 가문으로 전합니다. 15세기에는 문과에 급제해 《동국통감》 편찬에 참여한 손비장이 알려져 있고, 임진왜란 때에는 손기남·손덕심 등이 의병 활동과 서책·위판 보존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손기남은 돈암공파의 파조로 이 페이지의 파 카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말에는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손화중(목사공파로 표기)이 나왔습니다.

파(派)의 개요

밀양손씨중앙종친회는 좌사전공파·전농시사공파·중서령공파·군사공영파·부사공파·오곡공파·오한공파·국자진사공파·명천공파·현감공파·군수공파·목사공파·기로공파·정승공파·사부공파·첨정공파·충의공파·계륜공파·후능참봉공파 등 19개 분파를 꼽으며, 위키백과는 돈암공파·팔룡공파를 더한 21개 파를 나열합니다. 이 페이지에는 좌사부공파·중서령공파·군사공파·봉순대부공파·명천공파·돈암공파·목사공파의 개요가 실려 있습니다.

대표 인물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 독립운동가 손호·손병선·손정도, 정치·군인 손원일(초대 해군참모총장), 동학 지도자 손화중, 서예가 손재형, 마라토너 손기정, 언론인 손석희, 축구선수 손흥민 등이 있습니다.

유적

밀양 산외면 죽동의 죽원재사·죽포정사(군사공파), 당진 고대면 대촌리·진관리 일대의 명천공파 집성촌, 정읍 상평동의 손화중 묘역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종친회·족보·항렬

종친 조직으로 밀양손씨중앙종친회가 있습니다. 밀양 손씨는 통일된 항렬표 없이 계파·문중별로 항렬자를 따로 정해 쓰며, 대동보 기준 항렬은 41세부터 62~63세까지 정리되어 있습니다(예: 41세 模·植, 45세 漢·永, 50세 承·泰, 53세 純·載). 파별 항렬은 해당 카드(목사공파 등)를 참고하세요.

계파·세계(世系)의 자세한 갈래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우리 집안 내력은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우리 밀양 손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밀양)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밀양 손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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