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휘 閔泳徽

조선 말기 민씨 척족의 중심 정치인, 휘문의숙 설립자, 일제 자작,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

민영휘
민영휘 · 퍼블릭 도메인(저작자 미상, 1910년경), 위키미디어 커먼스
생몰1852 ~ 1935
시대조선 말기~일제강점기
본관여흥 민씨

생애 약력

민영휘(閔泳徽, 1852~1935)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으로 초명은 영준(泳駿), 자는 군팔(君八), 호는 하정(荷汀)입니다. 1901년 민영준에서 민영휘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본관은 여흥이며 민광훈의 8대손으로, 명성황후의 15촌 조카입니다. 아버지는 내무독판을 지낸 민두호이고, 어머니는 청송 심씨입니다.

1877년 별시 병과로 급제해 검열·주서·정언·부수찬을 거쳐 동지경연사·지돈령부사 등으로 승진했습니다. 명성황후와의 촌수는 먼 편이었으나 여흥 민씨의 대표급으로서 백성의 원성이 집중되어 임오군란 때에는 집이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청나라와 가까운 수구파의 중심으로 1884년 갑신정변 때 청군을 이용해 급진 개화파를 몰아내는 데 참여했고, 위안스카이와 가까워졌습니다. 이후 평안감사, 강화유수, 판서와 한성판윤을 두루 지내며 1893년에는 내무부 독판·통영사·선혜아문 당상을 겸했고 민씨 세력의 우두머리로 불렸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을 견제하려고 청나라에 군사를 요청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갑오경장 와중에 실각해 신안 임자도로 유배되었다가 청나라로 도피한 뒤 1895년 귀국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을 후원했고 중추원 의장·시종원경 등을 거쳤으며, 1906년에는 휘문고등학교의 전신 휘문의숙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1910년 일본 정부에서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공채를 사들였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 최고의 부호로 꼽혔습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명단에 올랐고, 같은 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그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후손들은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합니다. 학교 설립이라는 공과 친일 행적이라는 과가 함께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척족 세력의 중심

명성황후 정권 아래에서 청나라와 가까운 수구파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문중의 민영익과 함께 개항기 척족 정치의 한 축이었습니다.

휘문의숙과 친일 논란

1906년 휘문의숙을 세워 근대 교육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합병 직후 일본의 자작 작위를 받고 대자본가가 되어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묘소

묘소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민영휘 자주 묻는 질문

민영휘는 왜 친일 인물로 분류되나요?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고 공채를 사들인 점 등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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