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 閔泳翊

보빙사 정사로 미국을 방문한 정치인, 민씨 척족의 중심 인물, 서화가, 호 운미

민영익
민영익 · 퍼블릭 도메인(저작자 미상, 70년 이상 경과한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생몰1860 ~ 1914
시대조선 말기~일제강점기
본관여흥 민씨

생애 약력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우홍(遇鴻), 호는 운미(雲楣)·죽미·원정·천심죽재입니다. 민태호의 독자로 태어났고, 명성황후의 양오라버니 민승호가 1874년 폭사하자 그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는 그의 친동생입니다. 7대조 민유중의 딸이 인현왕후가 되었으나 그 뒤로 집안이 쇠락해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고 하며, 7세 때인 1866년 명성황후가 왕비가 되면서 집안이 일으켜졌습니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한 뒤 동도서기 방식의 개화 정책을 지지하며 별기군 운영을 맡았고, 1881년에는 통리기무아문군무사당상 등을 지냈습니다. 1883년 미국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자 답례로 보빙사가 파견되었는데 민영익은 정사이자 전권대신으로 사절단을 이끌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미대륙을 횡단해 뉴욕에서 체스터 아서 대통령에게 국서를 전했고, 보스턴 등을 순회한 뒤 유럽을 거쳐 귀국했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는 가장 먼저 자객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묄렌도르프에게 구출되고 미국인 의사 알렌의 치료로 회생했습니다. 이후 병조판서·한성판윤 등을 지냈지만 1886년 조선 정부의 친러 정책에 반대해 위안스카이에게 밀보했다가 입장이 난처해져 홍콩으로 망명했고, 귀국해 1898년 의정부 찬정이 되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뒤에는 고종 폐위 음모에 관련되어 다시 홍콩으로 망명했고, 1910년 한일병합 소식에도 귀국하지 않은 채 상하이에 머물다가 1914년 숨졌습니다. 행서에 능하고 묵란도에 뛰어났다고 전합니다.

보빙사 정사

1883년 보빙사는 조선이 미국에 보낸 첫 사절단으로, 민영익이 정사를 맡았습니다. 일행은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륙을 횡단했다고 전합니다.

가족과 양자 관계

양아버지 민승호의 뒤를 이었고, 명성황후는 그를 아우처럼 아꼈다고 전합니다. 나이 차이가 9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묘소

상하이에서 사망했으며,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아들 민정식. 순명효황후는 친동생입니다.

민영익 자주 묻는 질문

민영익은 어떤 일을 했나요?

1883년 보빙사 정사로 미국을 방문했고,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었으며 이후 홍콩·상하이에 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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