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왕후의 오빠이자 인종의 외삼촌, 대윤의 중심, 을사사화(1545)로 사사
| 생몰 | 1487 ~ 154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파평 윤씨 |
윤임(尹任, 1487~1545)은 조선 중기의 외척으로 본관은 파평이며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 윤여필입니다. 누이가 중종의 첫 계비 장경왕후로, 인종의 외삼촌이 되었습니다.
인종 쪽 외척의 중심인물로 '대윤'이라 불렸고,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 일파의 '소윤'과 왕위 계승을 두고 대립했습니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명종이 즉위하자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윤임은 이기 등의 탄핵으로 남해 유배가 결정되었으나 유배 길에 충주에서 사약을 받아 생을 마쳤으며 아들 셋도 사형되었습니다.
1567년 자손이 사면되었고 선조 즉위 후 아들들이 복권되었으며 1577년 신원·복관되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아들 윤흥신의 공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누이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 뒤 곧 세상을 떠났고,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으로서 대윤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문정왕후 쪽 소윤과의 갈등은 중종이 중재했으나 가라앉지 않았다고 합니다.
1545년 명종이 즉위하자 윤원형 일파가 일으킨 을사사화로 제거되었습니다. 유배 길에 사약을 받았고 아들 셋도 함께 사형되었습니다.
1577년 복관되었고 아들 윤흥신이 임진왜란 초기 다대포에서 아우 윤흥제와 함께 싸우다 전사해 1604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올랐으며 1736년 동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1590년 경기도 고양 향동으로 이장되었다고 전합니다.
아들 윤흥신은 임진왜란 때 다대포 첨사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판도공파(정정공파) 계통으로 정리됩니다.